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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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02, 특별하게 평범하게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11. 2. 12:03
2024년 10월 31일 오후 1시가 좀 지나고 첫째 아들이 태어났다. 신기하게 생겼고,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정도인데 4키로가 넘는 우량아라고 한다. 보자마자 울컥했다. 수술실에 와이프랑 아이가 같이 누워있는데 기쁜 감정도 아니고 슬픈 감정도 아니고 그냥 울컥했다. 애가 커서 수술하기로 결정한 이후로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특별한 이 여자가 가장 평범하게 수술 마치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모든 면에서 나에게 특별한 이 사람이 그 순간만큼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수술 잘 받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아이도 내겐 너무나 특별할테지만, 평범하게 어디 아프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다. 남들과 달라야할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은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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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24, 확 그냥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10. 24. 15:03
회사에서 연일 피곤한 일이 터진다. 처음에는 내 일이 아니었다가 갑작스레 나의 일이 되는 바람에 타의의 책임감으로 하게된 일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좀 대충했다. 처음에 단추를 대충 끼우니 막판에 가서는 피곤한 일이 몰리게 되는 형국이라 누구에게 탓을 할까 싶지만, 타의의 책임감이라는건 정말 애매하다. 이 일을 잘 끝내도 나에게 돌아오는 리워드가 없는데, 순전히 불어넣어진 책임감과 내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호기심으로만 계속 끌고 가기란.. 어렵다.. 그래서인가 요 몇달 사이에 ‘확 그냥’ 을 접두어로 붙인 다양한 상상을 했다. 확 그냥 들이 받어, 확 그냥 그만둬, 확 그냥 한 대 쥐어박어, 확 그냥, 확 그냥.. 화만 나는 형국이다. 평소 하던 것처럼 일상의 작은 기쁨과 행복을 모으며 화를 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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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12, 좀 이상한데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10. 12. 20:06
별 생각없이 즉흥적인 감정에 따라 한 일들 몇가지에 와이프가 짜증을 낸다. 집에서 큰 소리로 노래부르기, 사투리로 쓸데 없는 말하기, 말도 안되는 삼행시 도전하고 실패하기 등등 내가 하는 즉흥적인 일들의 대부분은 의미 없는 장난이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내가 장난을 쳐야지, 누구를 골탕먹여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나서 하는 일도 아니고 회로에 On 스위치가 들어오면 하고야말아버리는 본능적인 자동반사에 가까운 일들인데, 와이프는 이런걸 참 싫어하는가보다. 10년 넘게 이 사람과 함께하며 이런 장난은 수도없이 쳤던 것 같은데, 요즘 짜증도 많이내고, 조용히 있어달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임신하고나서 호르몬이 변한건지 몸이 불편해서 예민해진건지 아니면 원래 싫어했었는데 내가 이제야 눈치를 챈건지.. 모르겠다..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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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30, 그냥 나만 생각해보고 싶을 때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9. 30. 15:12
나는 대단한 생각이나 별다른 욕심이 없는 편이다. 하루하루 적당히 살고, 적당히 일하고, 가끔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이런저런 생각(혹은 망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와이프가 원하는게 있으면 최대한 해보려고 하고, 필요한게 있으면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내 주도로 해야된다는 무언가에 대해 발제를 해본다거나, 반드시 무엇을 해야한다 식의 생각도 잘 하지 않는다. 그렇게 큰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올해는 그렇게 살며 모아둔 재산의 많은 부분을 써버려야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 재산세 1, 2기분을 내니 솔직히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긴한다. 올해 순전히 나만을 위해서 한 일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만을 위해서 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내 주변 사람들이 기뻐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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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21, 방심 또 방심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9. 21. 08:20
하는 일들이 큰 문제없이 내가 생각한 경로대로 가고 있다. 잔병치레중인 내 몸 건강관리 말고는 크게 거슬릴 일 없는 일상이다. 가족도, 회사도, 투자도.. 하지만 이럴때는 몸을 더 낮추고, 경계해야한다는걸 경험적으로 배웠다. SNS 에 지인들이 올리는 온갖 휘황찬란한 일상에 카운터로 내가 올해 일구고 얻은 것들을 자랑하고 싶지만, 참아야한다. 내 삶의 방식을 내 스스로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굳이 자랑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자랑하는 순간 액운이 나를 덥쳐올 것이란걸 안다. 더군다나 저들의 삶도 틀린게 아니고, 나보다 유복하고 풍요로울지도 모른다. 하루 아침에 기온이 많이 내렸다. 무덥고 습한 여름에서 공기가 바삭한 가을이 되었다. 올해 더 많은 일이 있을테니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그러고보면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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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7. 24, 집은 또다른 지옥이다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7. 24. 18:28
나는 집을 좋아한다. 내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가장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사이 집은 내게 가장 불편한 곳이 되었다. 집에 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불편하다. 얼마 전, 와이프에게 내가 숨기고 있던 일 하나를 들켰다.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대처도 미숙했다. 와이프는 나에게 큰 실망을 했고, 아직 마음을 풀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명백한 나의 잘못이기에 억울하지도 않다. 잘못을 뉘우치고, 와이프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조금 억울한 감이라도 있으면 항변이라도 하겠는데, 그럴 수 있는 구석이 조금도 없다. 이번 일로 와이프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도 참으로 슬프고 스스로에기 답답해지는 구석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자책만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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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7. 10,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기온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7. 10. 22:26
4개월 조금 넘게 기다리면 난 아빠가 된다. 실감이 나거나 마음이 무거워진다거나 진중해지거나 등등 내 아버지가 보여주셨던 모습이 내게 드러나진 않는다. 막상 아이가 실제로 나오면 좀 달라지겠지. 와이프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누굴 닮았을지, 어떤 성격일지, 속 썩이면 어떡해야할지가 주된 주제다. 나와 와이프 사이에서 나온 아이라면 무던하게 착한 아이일 것 같은데, 내가 싫어하는 내 성격을 닮진 않기를 기원할 뿐. 연일 이어지는 무더운 날에 배가 불러오는 와이프를 보면 한참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더위에 지쳐 집에 돌아오면 내 피로가 먼저 신경쓰인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건, 내려가지 않는 기온처럼 나의 마음 속 온도도 내려가지 않고 있다는 점. 조금이나마 스트레스 내성이 강해진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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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5. 22, 다른 입장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5. 23. 19:13
난 비교적 유복하게 살아왔다. 용돈 끊길 걱정이나 학비 걱정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고, 인생에 큰 굴곡도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의 특징 중 이기적이라는 점도 있는걸 알지만, 알고 있기에 더욱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유독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수록 내가 직접적인 손해를 보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내 천성과도 같은 (의도적인) 배려를 접어두고 내 입장만을 주장해봤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내 지레짐작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본인의 입장만을 주장하고 산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입장, 다른 사람을 헤아린다는건 분명 괜찮은 일일테지만, 그렇게만 살아서는 내가 극심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 일들은 앞으로의 내게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나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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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5. 12, 떨어지지 않는 감기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5. 12. 18:19
이상하게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함께한지 1달이 되어간다. 비염으로 시작한 감기가 떠나질 않으면서 눈, 코, 입을이 모두 고생이다. 타고난 몸 덕에 봄, 가을에는 비염+감기+몸살 콤비로 한 달 가량을 날려버리곤 하는데, 이럴때면 늘 몸 상태가 감정 기복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된다. 몸이 좋아야 감정도, 생각도 모두 좋아지는데.. 감기가 떠나주지 않으니 틱틱거리려는 태도를 감추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평소 몸 상태가 좋을 때의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조증이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방방 뛰는 일상을 보내곤한다. 일년에 두 달. 봄, 가을에 한번씩 겪어야 하는 다운되는 기간을 버텨내기 위한 천성도 같이 탑재된 것 같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이 지긋지긋한 감기가 얼른 떨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