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
2024. 01. 07, 한 순간의 되돌림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5. 1. 7. 13:38
엄마 생일이자 동시에 다른 한 사람의 생일인 날, 카카오톡에 뜬 생일인 친구 목록에 그 사람의 이름이 뜬다. 슬픔은 많이 잊었다고, 기분도 나아졌다고, 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었는데, 나도 모르게 종이에 나이를 계산해본다. 12살 차이가 9살 차이로 줄었다. 조금 있으면 만날 것 같다. 그때도 지금처럼 참 어른 같을까? 이름 세글자 본 것만으로도 감정과 기억이 되감기된다. 세모가 두개 겹쳐진 이 버튼은 언제가 되어야 눌러지지 않을까. 내가 누르는 것도 아닌데. 이따금씩 자동으로 눌러지는 되감기 버튼은 그 이후 많은 시간을 쌓아온 나를 다시 그 시절로 데려간다. 모든 순간이 기억에 새겨져있진 않지만, 남아있는 기억의 대부분은 모두 좋은 기억들. 좋은 기억으로 엮인 인연의 끈이 이젠 더 길어질 순 ..
-
Perfect Days, 도시에 대한 찬가와 쌓여지는 감정들써서 남긴 조각들/좋아하는 것들 2025. 1. 6. 18:55
단 한번도 졸지 않고 영화를 끝낸 적 없던 감독 빔 벤더스의 최신작 퍼펙트 데이즈. 묘하게 지루하고 졸음을 일으키던 카메라 워크들이 가득한 전작들과 달리 한 도시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주연 배우의 열연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간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도쿄 화장실 청소부인 주인공(아쿠쇼 코지)는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식물에 물을 주고, 옷을 입고 나가 하늘을 보고, 일을 하고, 신사에 가서 점심을 먹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일을 하고, 퇴근하고, 목욕탕에 들렀다가, 단골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다 잠에 든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일어나서, 세탁소에 가고, 책을 한권 사고, 단골 주점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 잠에 든다. 단순하고 정해..
-
2024. 12. 30, 참담한 심정으로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12. 31. 00:37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팽목항에서 울부짖으시던 한 아이의 아버지의 외침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울음을 참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시간을 좀 더 돌려서. 전 직장 동년배 직원이 비가 많이 오는 날 다른 외국인 직원들에게 대피하라는 소식을 전하려고 현장에 진입했다가 그만 돌아오지 못했다. 밤새 눈이 충혈될 때까지 그가 구조되었다는 소식만을 기다리며 뉴스를 검색했다.시간을 좀 더 돌려서.그리고 어제 무안공항에서 말도 안되는 사고로 수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뉴스에서 연신 비춰주는 당시의 사고 영상은 참담하기 그지 없다.시간을 돌려보면.내가 슬플 이유는 없다. 아는 사람들도 아니고,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분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유가족이나 친인척 분들과는 비교도 안..
-
2024. 12. 22, 내 감정 네 감정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12. 22. 09:11
나는 내 감정만 소중히 여긴다.같은 대상에 대한 추억도 내껀 소중하지만 남의 추억은 별 볼일 없는 피상적인 감각이라고 깎아내린다. 내 생각은 정답이자, 진리요. 심사숙고 끝에 최적의 정답을 내린 것이니 반박조차 허용하지 않는다.그런 내게 너가 찾아왔다.내가 아닌 사람의 진의는 깨달을 수 없으며, 남의 아픔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섣불리 무릎꿇지도 않으며, 상대방의 입장은 내 입장에 후행한다고 고집 부리던 내게너가 찾아왔고너가 아프면, 왜 아픈지, 아프지 않을 순 없는지, 너를 세상에 불러 괜히 아프게 하는건 아닌지, 미안함과 고민과 이해하려는 시도가 중첩되고 버무려지면서너가 웃으면 나도 웃고,너가 울면 나도 울고 싶어지는너가 어떤 생각인지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해지는 그런 너.
-
돈과 투자에 대한 생각 - 1써서 남긴 조각들/좋아하는 것들 2024. 12. 13. 06:58
어릴적 우리집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다. 분명 부족하지도 않았지만, 넘친 적은 없었다. 4인 가족에겐 명백히 좁았던 아파트 가장 작은 방에 누워 공상에 빠지곤하는 나였기에 내 세상은 넓었고, 방만 좀 좁았을 뿐이다.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좀 먼 곳으로 배정받았다. 도곡, 대치동의 소위 살만큼 사는 집안의 아이들과 함께 다녀야하는 곳이었다. 타워팰리스에 누구니, 화장실이 집에 3개인 누구니, 차는 BMW, 벤츠니.. 그나마 다행인건 당시엔 지금처럼 돈으로 나뉘는 계급사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치동에서만 자란 친구를 내가 자란 동네로 처음 데려왔을때, 그 친구는 여기도 서울인지 싶었을거다.을씨년스러운 오래된 빌라와 노래방만 가득한 골목.. 단층짜리 쓰러져가는 건물에 들어서있는 분식집.. 나에겐 일상처럼 당연한..
-
2024. 12. 10, 잠과의 전쟁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12. 10. 21:41
아이가 집에 오고나서 잠은 줄었고, 식사는 건강해졌다. 살은 안빠진다. 주식시장도 망가지고, 시사 뉴스는 말도 안되는 일들로 가득하다. 올해 좋았는데, 한 해 농사를 근 두달만에 다 망쳐버렸다. 너무나 우울하지만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것만이 위안이다.다만 잠이 부족하니 성격이 날카로워진다. 무엇보다 엔돌핀이 세게 돌만한 신나는 일이 없다. 담배는 진작에 끊었고, 요즘엔 술도 마시지 않으니 신나는 일이 없다. 아이가 크는 모습, 자는 모습, 웃는 모습 보는 소소한 재미는 있다.잠과의 전쟁이란 말은 다분히 과장이 섞여있다. 나는 잘 안싸우고, 와이프가 대신 싸우기 때문. 그걸 알면서도 신나는 일이 없으니 냐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적응하거나, 다시 신나는 일들이 찾아오겠지.
-
2024. 11. 02, 특별하게 평범하게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11. 2. 12:03
2024년 10월 31일 오후 1시가 좀 지나고 첫째 아들이 태어났다. 신기하게 생겼고,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정도인데 4키로가 넘는 우량아라고 한다. 보자마자 울컥했다. 수술실에 와이프랑 아이가 같이 누워있는데 기쁜 감정도 아니고 슬픈 감정도 아니고 그냥 울컥했다. 애가 커서 수술하기로 결정한 이후로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특별한 이 여자가 가장 평범하게 수술 마치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모든 면에서 나에게 특별한 이 사람이 그 순간만큼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수술 잘 받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아이도 내겐 너무나 특별할테지만, 평범하게 어디 아프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다. 남들과 달라야할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은 건강하게..
-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괜찮은 식당들기억에 남는 장소들/아시아 2024. 10. 29. 16:02
동남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도락. 태국이나 베트남은 식도락 자체만으로도 여행의 컨셉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데, 말레이시아는 유명한 음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선뜻 떠오르는게 없다. 그나마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는 싱가폴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상당한 식당들이 많지만, 여행지인 코나키나발루에는 그정도의 식도락까진 없다. 하지만 해산물 관련 식당은 유명한 곳들이 많고, 그 중에서도 나는 KK Garden 을 선택했다. 웰컴 시푸드나 가야도 유명하지만 이 곳이 구글 평점이 가장 높았고, 무엇보다 두리안 거리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식당은 더운 날씨를 직격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오픈식으로 구성되어있고, 업장 가운데에는 수족관 급의 어항이 마련되어 있어서 내가 먹을 해산물을 직접 보고 고르는 것도 가능하다. 시..
-
2024. 10. 24, 확 그냥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4. 10. 24. 15:03
회사에서 연일 피곤한 일이 터진다. 처음에는 내 일이 아니었다가 갑작스레 나의 일이 되는 바람에 타의의 책임감으로 하게된 일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좀 대충했다. 처음에 단추를 대충 끼우니 막판에 가서는 피곤한 일이 몰리게 되는 형국이라 누구에게 탓을 할까 싶지만, 타의의 책임감이라는건 정말 애매하다. 이 일을 잘 끝내도 나에게 돌아오는 리워드가 없는데, 순전히 불어넣어진 책임감과 내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호기심으로만 계속 끌고 가기란.. 어렵다.. 그래서인가 요 몇달 사이에 ‘확 그냥’ 을 접두어로 붙인 다양한 상상을 했다. 확 그냥 들이 받어, 확 그냥 그만둬, 확 그냥 한 대 쥐어박어, 확 그냥, 확 그냥.. 화만 나는 형국이다. 평소 하던 것처럼 일상의 작은 기쁨과 행복을 모으며 화를 식혀..
-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하얏트 센트릭과 샹그릴라 탄중아루기억에 남는 장소들/아시아 2024. 10. 24. 08:26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숙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여행가서 바깥 구경하기 바쁘니 호텔은 잠만 자면 된다고 할지 몰라도, 피곤한 여행 일정의 매일매일을 괜찮은 호텔에서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여행의 재미는 배가 된다. 코나키나발루 여행에서는 5성급 호텔 두군데를 숙소로 정했다. 액티비티를 예약한 앞쪽 일정에서는 그나마 시내(?)에 가까운 하얏트 센트릭. 별다른 일정 없이 쇼핑, 마사지, 맛집으로만 일정을 채운 여행의 뒷부분에서는 샹그릴라 탄중아루를 택했다. 하얏트 센트릭의 장점은 무엇보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시설이다. 수영장, 식당, 헬스장, 바, 객실 등 모든 시설이 최근에 지어진 티를 팍팍 내고 있다. 아침 먹기 전에 수영장에서 노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