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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야자키, 현립 미술관과 신궁기억에 남는 장소들/일본 2023. 3. 24. 23:53
맑은 하늘, 밝은 발걸음 미야자키가 일본 국내 신혼여행지로는 항상 수위에 꼽힌다는데, 막상 시내에서는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거 말곤 별로 할게 없다. 주변에 있는 골프장이나 아오시마 신사 덕분인지 신혼여행으로 놀러와 따뜻한 날씨를 즐기긴 좋을 것 같긴 하다. 오늘은 시내에서 둘러볼 만한 곳을 찾다 현립 미술관과 신궁을 가기로 결정. 적당히 쌀쌀한 청량감 넘치는 날씨는 걷기에 딱! 적당했다.
비례가 예술 오카다 신이치의 설계라는데 처음 들어보는 건축가라 찾아보니 오카야마 현립 미술관과 일본 경시청 본청의 설계를 했던 경력이 대표작으로 보인다. 찾아보니 놀랍게도 오카야마 현립 미술관에 쓰인 재료나 비례가 미야자키 현립 미술관과 거의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외관에서 풍기는 단단함과 미야자키의 바람을 형상화한 디자인은 얌전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상당하다.
미술관이 전부가 아니야 인구 40만 내외의 작은 도시에 있는 미술관인데, 미술관과 이를 둘러싼 문화공원의 규모가 상당하다. 공원 안에는 오페라하우스와 도서관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공터도 마련되어있다. 소프트파워는 누적적으로 쌓이는 것이기에 이런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는건 부러울 따름.
들어가는 길.. 입구를 찾을 겸 미술관 건물을 한바퀴 돌아보니 미술관 자체로도 상당히 재미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진부할 수 있는 석재를 가지고 적당한 긴장감과 위용을 잘 드러내었고, 곳곳에 배치된 오브젝트들은 재미를 한껏 배가 시켜준다.
나오면서 다시 봐도 비례에 감탄하게 된다. 상설 전시는 무료로 개방되어 있고, 특별 전시는 약 두어달 간의 준비를 거쳐 유료로 전시한다. 나는 사전조사 없이 방문했기 때문에 특별전시 기간은 놓쳤고, 상설 전시관을 둘러봤다. 일본 전통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온갖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놀랐던 점은 이 미야자키라는 작은 도시에 피에르 보나르, 르네 마그리트와 피카소의 작품이 있다는 점이었다. 피에르 보나르 작품은 무려 사진 촬영까지 가능! 피카소 작품은 나의 방문 당시 초기작이 전시되어 있어 입체파가 된 피카소의 작품은 아니었다 (다른 피카소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튼 4천점 가량의 작품을 소장하는 이 미술관. 특별 전시 기간에도 방문할 의사가 있는 대단한 곳이다.
신사보다 윗 레벨 미야자키 현립 미술관에서 10분 안되는 시간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미야자키 신궁. 오뎅집 사장님 말씀으로는 미야자키 사람들의 정신적인 쉼터라고 한다. 신사와 달리 신궁은 천왕과 관련된 신이나 천왕 그 자체를 모시는 곳이다. 신사보다 한층 격이 높은 곳.
분위기가 다르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신사와 달리 신궁의 분위기는 조금 더 차분하다. 시설의 정비도 훨씬 잘 되어 있는 느낌. 예복을 정갈히 갖춰 입은 신궁의 직원(?)들이 곳곳에서 용무를 보고 있다. 구경하던 중 가족으로 보이는 몇명이 사전에 예약이 된듯 위 사진에서 보이는 신궁의 메인 시설로 들어가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슨 내용의 기도를 하는지 몰라도 엄숙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신으로부터의 강렬한 기적을 원하는 듯한 모습에 차마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었다.
유지 관리에 매우 힘을 쓴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신궁은 관리의 차원이 다르다. 조경도 신사보다 규모와 관리 측면에서 레벨이 다르다.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어려운 일들 앞에서 신께 기댄다는게 유신론자와 불신론자를 떠나 불가지론자에게도 나쁜 일은 절대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는데 안되는 일은 어찌하리.. 기적을 바라는 수 밖에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토리이 멋지게 관리된 조경과 신궁의 엄숙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미야자키 신궁.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들이 콧대 세우고 다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기댈 곳이 있단걸 아는 걸지도 모른다.
여튼 미야자키 신궁을 둘러싼 공원은 규모도 상당하고 돌아볼 만한 곳도 많다. 여유롭게 거닐며 생각 정리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또 없을텐데, 날이 더워지는 4월부터는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아마도 지옥의 무더위 속에서 니르바나를 느끼지 않으려나.두부랑 소스가 달라! 미술관에서 느낀 벅찬 감정과 신궁에서 차분해진 감정을 뒤섞을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 마파두부로 정했다. 일본에서 누가 마파두부를 먹나 싶겠지만, 은근 일본식 마파두부는 두반장 맛도 덜하고 두부도 달라서 상당한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쉬운 메뉴 중 하나다. 스시나 라멘만 먹지 말고 이런 메뉴들도 먹어보는 재미를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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