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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기리시마 긴코만 국립공원기억에 남는 장소들/일본 2023. 3. 11. 00:34
사일런트 힐보다 무서워.. 관광객 중에 산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여기에 올 일이 있을까? 가고시마에서도 미야자키에서도 구마모토에서도 애매하게 멀고 동선에 넣는 순간 며칠을 그냥 잡아먹어 버린다.
지도에는 기리시마 긴코만 국립공원이라 되어 있지만, 한번 가본 느낌 상으로는 동부와 서부로 나뉘는 것 같다. 조용히 자연 위주의 감상을 누릴 수 있는 동부와 온천과 관광 위주의 기분을 낼 수 있는 서부. 나는 이번 여행에서는 동부만 방문했다.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코스모스가 유명한 이코마 고원에 방문 했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손님은 나 밖에 없고, 심지어 매표소나 기타 운영시설은 모두 폐점 상태. 안개가 잦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 덕분에 규슈를 내려다보려는 나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 호러영화 뺨치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의도치않은 방황을 하다 돌아왔다.
심신의 안정을.. 안개 때문에 도저히 고원에 머물기 민망해져서 급히 다른 곳을 찾아 방문한 기리시마 신사. 공식 명칭은 히가시 기리시마 신사인 것 같다. 시간내서 방문할만한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신사 입구와 고즈넉한 숲에 둘러싸인 분위기는 괜찮은 편. 뭐라도 느껴야 했던 마음 때문인지 신사의 단청이 깔끔하게 다가왔다. 평일 오전에 나 말고도 2~3팀 정도가 방문한걸 보면 기도빨(?) 괜찮은 신사였던 것 같다.
댐인가.. 지나가다 보인 특이한 구조물. 댐은 아니고 산에서 떠내려오는 여러 지장물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울창한 산림을 사람이 관리하지 못하고 자연림으로 알아서 자라나게 내버려두니 폭우나 태풍이 몰아치는 시기에는 나뭇가지나 토사가 많이 밀려내려오나보다. 하긴 규슈 인구가 몇이나 된다고 섬 안에 몇개나 있는 국립공원의 수목을 관리한단 말인가.
미이케 호수.. 역시나.. 고원과 신사를 지나 희망을 품고 찾은 미이케 호수. 역시나 안개 덕분에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잃어버렸다. 미이케 호수는 화산 분화로 생겨난 거대한 호수라는데, 그만큼 역사도 깊고 주변 분위기도 남다를거라 생각했기에 안개로 뒤덮인 광경은 사뭇 아쉬울 따름. 다시 한번 방문해서 제대로 보고 싶지만, 앞서 말한것 처럼 이곳은 규슈 어느 도시에서도 애매한 거리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숙소를 구하기도 어렵고, 찾아오는 것도 가성비가 훌륭한 편은 아니다.
닭고기 맛있어 위로가 되는 순간이라면 근처를 지나가다 들른 레스토랑의 음식이 훌륭했다는 점. 아무 기대 없이 식당이 열려있길래 주차를 하고 들어가 주문을 했다.
닭고기 정말 맛있어 미야자키 닭이 유명한 이유는 뭘까. 닭의 모든 부위가 근위처럼 쫄깃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 토종닭 처럼 연배가 느껴지는 맛도 아니고, 영계를 쓴 것처럼 살이 마냥 부드럽지도 않고, 탱탱한 식감과 닭고기의 풍미가 가득하다. 특히 탱탱한 식감은 그야말로 발군. 미야자키 근처를 돌아다니며 여러 닭고기를 먹어봤는데, 처음에는 ‘닭똥집이 전문인 동네인가?’ 싶었지만, 나중엔 기르는 닭의 육질 자체가 탱탱한 동네라는 것을 알았다. 자칫 평범할 수 있는 그릴드 치킨의 맛을 놀라운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체 역시 닭고기.
다시 시골 고원이든 호수든 뇌리에 깊이 박힐만한 광경을 찾아 떠났지만, 조용한 시골을 감싼 운무와 차분한 공기만큼 기억에 남는 광경은 없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던 안개도, 미스테리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던 신사의 입구도, 나를 따스하게 반겨준 주인 내외가 있는. 어제 한바퀴 돌아보며 얕은 정이 깃든 동네만한 감상은 받기 힘들다.
낯설지만 익숙했던 그 곳에서 내린 나름의 결론들이 쉽사리 희석되어 핑계 많은 현실에 맞닿지 않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부디 내 생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일상이길.'기억에 남는 장소들 >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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