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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아마도 2022년 올해의 영화써서 남긴 조각들/좋아하는 것들 2022. 5. 13. 22:58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이창동 감독의 버닝 그리고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 이렇게 3개는 최근에 접한 문화 생활 중에 단연 최고였던 것들이다. 그리고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앞선 3개의 작품 위에 이름을 올릴 것 같다.
영화에서 내가 주의깊게 살펴본 인물은 크게 3명이다. 1)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연기한 남자 주인공, 2) 오카다 마사키가 연기한 아내의 내연남 그리고 3) 차를 운전한 미우라 토코. 극중 세상을 떠난 와이프에 대해서는 큰 감정 이입이나 관심이 가질 않았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유일하게 나의 공간인 '빨간 차'를 공유했던 와이프는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들과도 관계를 가지다 세상을 떠났다. 콘크리트로 대변되는 현대 문명의 무채색 속에서 눈에 띄는 빨간색 사브 자동차가 주는 대비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는 나만의 스페이스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 아내에게 심지어는 연극의 결과가 아닌 과정까지도 오픈했었는데, 배신감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주인공이 차에서 담배를 피는 장면은 지독한 슬픔이 묻어나왔다. 끓어오르는 배신감에 직선적으로만 생각해왔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차오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기사역을 맡은 미우라 토코는 1) 들어주는 것 2) 있어주는 것 3) 얘기해주는 것 만으로 주인공에게 위로를 건넨다. 극중 나오는 바냐 아저씨 연극에서 나오는 대사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행위를 먼저 하자는 투로 던져지는데, 미우라 토코가 했던 기사 역할도 주인공의 지독하리만치 쌓여있는 슬픔을 매일매일 조금씩 나눠가주는 역할이라는 느김이 들었다.
믿음과 배신의 고리에서 위로로 이어지는 작은 고리가 시각화 되어 각자의 이야기들이 점층적으로 쌓여 올라가는 것 같았다.
오카다 마사키가 연기한 다카스키의 시점에서 내용을 짚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다카하시가 사랑한 주인공의 아내는 죽어버렸고, 다카하시가 보기엔 이 죽음의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든 지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극중에서 보이는 다카하시의 행실불량이 복선이라면, 결국 주인공의 작품을 망치기 위해 신문에서 그의 이름을 봤을 때부터 복수극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카하시가 잡혀가던 장면에서 고개숙여 인사하는 얼굴은 누구에게도 노출되지 않는다. 그저 그는 덤덤히 잡혀들어갈 뿐이다. 고개 숙여 인사하던 그 때, 다카하시는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하시의 복수극이 남자 주인공 가후쿠에게 반성할 수 있는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일상으로 돌아가 살아가야 하는 체호프로 다시 회귀하게 되는 모습도 재미있다.
관계란 참 어렵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기도 어렵고,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에서 나온 연극은 그런 소통의 피상적인 모습을 대변한다. 다른 나라의 말로 어떻게 연극 연습을 하며, 메세지를 전달하겠는가. 하지만 계속해서 연습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결국에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점. 계속해서 얘기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메세지가 담겨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잘 만든 영화나 소설은 특별하지 않은 소재이거나 아주 특이한 소재이더라도 '음.. 그럴 수 있어' 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하루키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각자 이 소설과 영화를 어떻게 시작한걸까. 훗카이도 여행 중 봤던 무너진 집에서 시작된걸지. 길을 걷다 지나치듯 본 노란색(원작에서는 차가 노란색) 사브 자동차에 누가 타고 있을지 생각하면서 시작된걸까. 여기서 단편적인 체호프에 대한 이해를 가져다 대어보면, '일상 속 모든 순간과 장면에는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모든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어 일상의 우리를 지탱해준다' 고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영화에 대해서나 체호프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점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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