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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Taveras, ###써서 남긴 조각들/좋아하는 것들 2022. 3. 31. 00:38
일면식은 없지만 동생 같았던 92년생 유망주 랭킹에서 언제나 1위, 빅리그 승격만을 기다려오던 그 선수. Oscar Taveras (당시엔 #18).
이젠 추억이 된 2010년 초반, MLB 팜랭킹에서 카디널스가 언제나 상위권에 위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피스코티, 와카, 크레이그, 곤잘레스, 카민스키 등등 신들린 드래프트들이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를 포함한 카디널스 팬들의 염원은 바로 타베라스. 하위 리그에서의 맹폭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하다 입단 6년만에 빅리그 그라운드를 밟으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톡톡튀는 성격은 차분한 라커룸 분위기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야말로 엄청난 선수가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2014년 승격 첫 해, 빅리그 변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줬지만, 발군의 운동능력과 푸홀스 이후 처음인 것 같은 느낌을 팍팍 주는 장타력은 동생 소리가 절로 나오는 아주 흐뭇한 선수였다. 나이도 어리니 팀의 중심타선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생각하며 행복한 미래를 나 혼자 그렸었다. 특히나 2014 NLCS 2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홈런을 치던 모습은 감탄사를 연발케하는 기대 그 이상의 모습이었다. 호쾌한 타격폼에서 발사된 쭉쭉 뻗어나가는 공을 보면서 역시 가을 좀비 유망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형과 환호하던 그 때.
콜튼 웡의 주루사로 허무하게 시리즈를 내주고, 가을 좀비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다른 집 잔치가 되어버린 월드시리즈를 습관처럼 보고 있던 중, 타베라스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철이 덜 든건지 팀 분위기가 엉망일 때도 더그아웃에서 가장 열심히 응원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선 악의라곤 느껴지지 않았고, 팀의 미래를 이끌어 갈 거라는 믿음까지 있던 선수였는데, 분명 2주 전에 NLCS 에서 홈런을 쳤었는데.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가버리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일면식도 없고, 카디널스의 트리플A 경기까지 찾아보는 사람은 아니기에 Prospect Report 와 빅리그에서의 반년 정도가 타베라스를 본 전부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허무했다. 2014년 10월, 한창 회사에서 '이거 뭔가 잘못되고 있는거 같은데?' 를 느끼던 자아와 월급봉투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그 시절,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좋은 친구를 잃은 기분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이 선수를 생각한다. 재능과 노력으로 빚은 성공의 목전에서 빛이 꺼져버리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기에, 비슷한 케이스를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일은 비극도 아니고 그저 Unfair 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글을 쓰면서 다시 허무해진다.
매일 꾸던 꿈이 현실되어 두 발로 선 타석, 휘두른 배트,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공은 담장을 넘는다.
남들은 날 영웅이라 하겠지 이젠 고생 끝. 이젠 엄마 아빠한테도 효도할거야.
내게 남은 건 승승장구 뿐 난 역사에 이름을 남길 타자가 되겠지.
첫 타석부터 어찌 난 이리도 멋진 일을 해낸걸까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팀은 졌지만 살면서 본 사람의 수 보다 많은 플래쉬가 날 향해 터지네. 은근하게 미소를 숨기기란 너무 어려워.
그럼 이제 즐겨볼까.---
오 나를 주체할 수가 없어 엑셀을 그만 밟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어.
오 이런 저건 뭘까 갑자기 나타난 나를 막는 괴물, 하지만 나는 너를 이겨낼 수 있어.
오 이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일단 숨을 쉬어보자. 이런 내 몸이 움직이질 않아. 너무 피곤해. 눈을 감을래.
자고 일어나면 모두 괜찮아질거야.
왜냐하면 나는 홈런을 쳤거든.난 지금도 부시스타디움 우익수 자리는 불을 끄고 싶지 않아.. '써서 남긴 조각들 > 좋아하는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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