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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밤거리기억에 남는 장소들/미주 2022. 4. 5. 10:36
체류하는 내내 무척이나 습하고 더웠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미팅 장소로 걸어가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내가 미디어에서 접한 뉴욕의 모습은 건조하고 추운 곳이었는데, 콘크리트 도시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하루에 3~4개의 미팅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출장자들과 당일 결과를 정리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습한 날씨에 정장을 입고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된 몸을 위로하고자 간단히 샤워를 하면 늦은 밤이다. 밤 9시 즈음하여 밤거리를 걸어보려고 숙소 근처로 나와서 한참을 걸었다. 록펠러 센터,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플랫 아이언 빌딩, 메트 라이프 빌딩 같이 유명한 건축물들을 스치듯 구경했다.
개인적으로 건축물들에 담긴 역사와 해당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에 대해 알아보는걸 즐기지만, 플랫아이언 빌딩은 최초의 철골구조 건물이라는 점 외에는 큰 공부 없이 찾아갔다. 밤에 보는 건물이라 디테일을 눈여겨 보긴 힘들었기에 빨리 지나쳤다는 점도 한 몫.
맨하탄 미드타운 길거리에 사람들이 슬슬 줄어갈 무렵, 숙소 근처에 다양한 맥주들을 파는 가게를 발견해서 들어갔다. 구스 아일랜드를 탭으로 마시는 재미가 쏠쏠한 바 였는데, 맥주값은 상당히 비쌌다. 나처럼 혼자 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에게 여행을 온 것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묻길래, 한국에서 출장으로 와서 대충의 출장 목적을 설명해주었다. 반팔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미드타운을 돌아다니는 동양인이 신기한건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와서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었다.
JP 모건에서 바이오/헬스케어 부문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고 대답한 그 친구는 놀랍게도 셀트리온을 알고 있었다. 습하고 더운 여름의 뉴욕에서의 밤 중에 셀트리온을 안다는 서양인을 만나서 놀라움 반, 신기함 반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몰라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바이오주 투자에 대해선 남부끄럽지 않은 아픈 역사를 가진 내가 미국 바이오 종목들 이야기를 풀어내니 상대방도 지루하진 않았나보다. 펀드를 운용하는 사람답게 나처럼 속칭 잡주를 건드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바이오로 시작해서 간략하게나마 매크로에 대한 본인 생각을 소신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수다를 떨다보니 11시가 넘고, 서로 많이 취한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무섭게 생긴 바텐더 아저씨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웃으며 얘기하는걸 듣자마자, 우리 둘 모두 일어서서 계산하고 나왔다. 다시 볼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며 연락처나 명함을 교환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고 쿨하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나이를 어림짐작 해보면 나보다 조금 많은 정도라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는데 본인의 소신과 회사에서의 넓은 권한 범위가 참 부러웠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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