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서 남긴 조각들/30대 유부남 일기

2022. 05. 07, 혼자서 그러다가 또 같이

Almaymente 2022. 5. 7. 09:02

남자는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고 했던가

 남녀간 연애 얘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인 '남자가 동굴 속으로~'류의 말에서 나 역시 벗어나기 힘든 것일까. 다투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이 없어도 나는 가끔 스스로 동굴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걸 느낀다.

 

 미래를 함께 약속한 아내의 입장에서는 속에서 천불이 나도 이상하지 않겠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다 갑자기 내가 말도 없이 훌쩍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거나 퇴근할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에는 어이가 없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일들을 하는건 아니다. 좋아하는 야구팀의 플레이를 찾아보거나,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가지고 있는(하지만 전문성은 많이 떨어지는) Macro Economics 에 대한 글들을 읽는다거나, 서점에서 두꺼운 책을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다거나 하는 식이다.

 

 다만 내가 나를 진단해볼 때, 이런 동굴 생활의 빈도가 잦지 않다는 점은 자랑할 만하다. 크게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의 동굴 생활의 성격과 유사하기에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의 내 캐릭터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참 싫은 내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내 스스로 싫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기에, 회사에선 원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의 내가 살아간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런 나의 다른 모습이 주는 익숙치 않은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동굴 속에서 내가 보내는 시간 속 내 모습이 주는 효익과 비슷하다. 내가 그린 나의 모습을 행한다는 점에서 비슷한걸까.

 

 여하튼 혼자 동굴 속에서 지내거나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도,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 마음과 머리 속에서 이미 아내와 함께 사는 그 집이 나의 안식처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혼자 있다가 만나는 아내는 더 좋다. 혼자서 보낸 짧은 시간 덕분일까,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