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투자에 대한 생각 - 1

어릴적 우리집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다. 분명 부족하지도 않았지만, 넘친 적은 없었다. 4인 가족에겐 명백히 좁았던 아파트 가장 작은 방에 누워 공상에 빠지곤하는 나였기에 내 세상은 넓었고, 방만 좀 좁았을 뿐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좀 먼 곳으로 배정받았다. 도곡, 대치동의 소위 살만큼 사는 집안의 아이들과 함께 다녀야하는 곳이었다. 타워팰리스에 누구니, 화장실이 집에 3개인 누구니, 차는 BMW, 벤츠니.. 그나마 다행인건 당시엔 지금처럼 돈으로 나뉘는 계급사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치동에서만 자란 친구를 내가 자란 동네로 처음 데려왔을때, 그 친구는 여기도 서울인지 싶었을거다.
을씨년스러운 오래된 빌라와 노래방만 가득한 골목.. 단층짜리 쓰러져가는 건물에 들어서있는 분식집.. 나에겐 일상처럼 당연한 것들이었기에 낡디낡은 분식집에서 한턱 내고 농구나 하러가는게 나는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의 마음은? 지금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집안에 화장실이 3개나 있던 친구나 대학 진학 선물로 BMW를 받은 친구나 나나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되려 손수 일군 부 자체는 내가 더 많을 것이다. 많이 아끼고, 일찍 투자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이 양상은 내가 삐끗하거나, 친구가 큰 복을 얻거나, 특히 상속의 시점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역전될 수 밖에 없다. 양상이 바뀐다고 이상할 건 없다. 원래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 친구가 다시 부자가 되는 것과 부모님이 힘들게 가꾸신 재산 중 물려받을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내가 2~3년 사회생활 투자생활 먼저 시작했다고 계속 앞서있는건 웃기지 않은가.
고등학교 친구들은 지금도 종종 만난다. 지금 사는 모습은 크게보면 다 똑같다. 한가지 가장 크게 다른점은 투자에
대한 생각이다. 난 내가 괜찮다 싶은 투자 아이디어가 생기면 하루이틀 내에 공부를 끝내고 투자를 실행하거나 하지 않거나하는 결론을 낸다. 몇번은 성공, 몇번은 실패하지만 대체로 빠르게 움직인다. 내 친구들? 움직이는거 정말 느리다. 투자하다가 이명이 생기고, 밤에 잠을 못자는 경험도 얘기해주면 재밌어하기만 한다.
이 글은 사회적 계층과 부의 재분배를 다루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내 주변 투자의 모수가 큰 사람들과 모수가 작은
사람(특히 나)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짐작해보려고 남기는 메모다. 돈과 투자에 대한 태도.. 작년 말부터 계속 머릿속을 멤돌더니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아 남기는 글이다.